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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체육 재건의 기치(旗幟)를 드높이고자 활발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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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admin

9월 17, 2020

민족체육 재건의 기치(旗幟)를 드높이고자 활발한 활동

조선체육회는 정치적인 중립선언을 통해 순수한 체육단체로서 성격을 명확히 밝혀 해방공간에서

스포츠 재건활동의 중심 단체로서 그 역량을 발휘 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체육회는 1947년 다시금 임원진을 개편하여 점차 체제의 기반을 다져나갔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회장 여운형, 부회장 유억겸, 이사장 이병학 유임, 전경무가 신임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유억겸과 함께

2인 부회장 체제가 구축되고 전체인원도 46년에 비해 15명 감소한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체육회의 임원진 개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운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1947년 5월 29일 전경무 부회장이 올림픽 총회 참석차 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7월 19일은 여운형 회장이 피살되었으며,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취임 불과 50일인 11월 8일

유억겸 회장이 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에 조선체육회는 신기준 부회장이 회장 직무를 대행하고 이병학 이사장이 사무국장을 겸임하면서

상무이사 겸 재무부장에 이윤용, 총무부장 겸 선전부장에 김용구, 보건체육부장에 조영하,

경경기부장에 최인호, 상무이사에 정상윤을 각각 선출하는 인사를 단행하여 조직의 위기 상황에 대처했다.

이처럼 해방공간 시기 조선체육회의 조직개편은 1946년 2월 초기 구성원들의 요구에 의한 체제의 형성,

1947년 5월 개편은 임원진 개선의 의지의 표출, 11월 개편은 임원진 공석에 대한 해결책의 모색의 위한

방향으로 단행되었으며 총3차에 걸친 개편의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946년 초기 조직 구성에는 부회장 직위는 없고 대신 고문이 존재했으며

2차 개편인 1947년 5월 이후부터 부회장이 선출되어 총10개의 임원조직에서 11개의 임원조직으로

변경된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조직명(組織名)도 상무이사, 이사장, 사무국장 직위는 1~3차까지 계속 존속이 되었으나

2차 개편에서 평의원, 상무간사 직위는 없어지고 체육부장을 보건체육부장으로 변경하였고

조영하가 그대로 담담하게 했다.

또한 사무국장, 총무부장, 경기부장, 정보부장 직위를 신설하여 보다 세부적으로 직무를 구분하여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1947년 11월 3차 개편은 회장업무를 신기준이 대행하고 부회장은 공석으로 유지, 재무 분야를

이사와 부장으로 세분하여 관리하고 정보부장을 선전부장으로 직위명을 변경했다.

이처럼 조선체육회는 구성원들의 요구와 상황에 따라 체제 변화시키고 조직을 정비해 나갔으며

이를 기반으로 민족체육 재건의 기치(旗幟)를 드높이고자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참고문헌 : 파워볼사이트https://wastecapn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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